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이완 독립운동 (문단 편집) === 사회 === * [[대만어]]가 국어, 공용어로 지정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법적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1945년 중화민국의 대만 수복 이래 70년 이상 쓰인 언어인 만큼 [[표준중국어]]와 [[객가어]]의 지위도 역시 공용어로 지정될 것이다.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그냥 표준중국어를 계속 국어로 사용할 수도 있다. 원주민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계속되거나, 중화민국(진먼과 마쭈만 남은 상태) 정부의 정책보다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 한족계 대만 본성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한답시고 원주민어가 더 무시당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이 경우 원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다. * 외성인들은 대만 공화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이주하게 되고 중립파들은 대만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미 반백년이 넘게 외성인들이 거주하여 동화랑 혼혈이 진행된 상황에서 외성인 강제 이주는 엄청난 대혼란과 중국의 개입을 낳기만 할뿐 불가능하다. [[외성인]]의 경우 이미 국부천대 이래 반세기 동안 대만인으로 살아온만큼 극렬 중화주의자 이외에는 계속 대만인으로 살게될 것이다. 다만 대만 공화국 국적으로 남을 것인지 중국 국적을 취득할 것인지 선택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완전한 대만 공화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만일 중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 그러나 중국 여권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국가수도 적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꽃필것이다. 그래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는데 중국본토의 부자들이 취하는 방식이다.] 화교처럼 대만공화국의 영주권자로서 영주할 권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구 중화민국과 대만공화국 내의 외성인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법적으로 [[외성인]]에 대한 차별은 엄격히 금지할 수 있다. 다만 외성인의 인구가 대만 인구 전체의 1/10에 불과한 만큼 예전 만큼의 기득권을 누리기에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 [[장제스]]의 묘를 중국으로 이장하라는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이장 요청을 중국 국민당이 받아들일 경우 중국으로 이장될 가능성이 높다. 장제스는 자신의 유해를 타이완에 묻지말고 중화민국이 본토를 되찾는 때 자신의 고향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이후 천수이볜 집권 당시 장제스의 묘를 고향인 저장성 닝보로 이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때 현지 관료들도 내심 바라는 분위기였으나 마잉주 집권 이후 무산되었다. 하지만 한때 폴란드에 속해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로 넘어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묘가 있는 폴란드의 국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사례로 볼때 대만 땅에 그대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대만을 장기간 철권독재로 통치한 만큼 장제스의 기념물들은 대부분 철거, 중국으로 이전 될 가능성이 높지만, [[쑨원]]까지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대만 민족이 중국과의 연결성을 완전히 부정할지, 아니면 연결되었다가 나중에 분리되어 지금 독립을 추진하기로 한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싱가포르]]에서도 쑨원 기념관이 있는 걸 참고하면 된다.[* 다만 싱가포르의 한족들은 말레이시아 시절이나 독립한 현재와는 달리 영국령 시절에는 '중국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다만 쑨원에 대한 취급이 국부(國父)가 아닌 '중국([[중화권]]) 혹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지도자' 정도로 격하(?)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중국'인이 '대만'공화국의 국부가 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 [[우창 봉기]] 및 [[신해혁명]]의 기념일이자 중화민국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이 건국기념일이 아닌 외국의 사건 기념일 정도로 격하될 것이다. [[신해혁명]]은 더 이상 대만 공화국과 관계없는 중화민국과 현행 중국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인 사건이 될것이다. 당연히 평일이 된다. 대신 대만공화국의 건국기념일이 새로이 제정되어 정부에 의해 기념되어질 것이다. * [[2.28 사건|평화기념일(2.28)]]의 위상이 매우 높아질 것이며 현재 대만에서 민주열사로 추앙받는 사건 당시 관련자들은 오늘날 한국의 독립운동가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 역사 교육에서도 중국의 역사는 세계사의 일부로서는 몰라도 국사로서는 전혀 배우지 않고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대만청치시기]]의 경우도 잔존 [[다두 왕국]]의 역사 위주로 교육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대만 원주민 역사의 경우 기록이 거의 남아있는게 없는데다가 [[대만청치시기]]의 역사도 엄연한 대만의 역사이므로 그대로 교육할 것이다.(한국에서 [[일제강점기]]를 치욕스럽게 여긴다 해도 한국의 역사로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다두 왕국은 1732년에 완전히 멸망하므로 결국 1732년부터 1895년까지는 청나라의 통치 위주로 대만사를 배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중국사는 세계사 과목의 일부로서 완전히 외국의 역사로 교육하게 되며 비중도 줄어들 것이다. * 대만 지리 교과서에는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큰 섬이 [[하이난성|하이난]](海南)으로 서술될 것이다. [[천수이볜]] 정권 시절에는 대만에서도 중국 지리 교과에 저렇게 기술했다. [[마잉주]] 정권 시절에는 다시 대만이 가장 큰 섬으로 기술되었다가, [[차이잉원]] 정권 출범 이후 [[천수이볜]] 정권기의 교육과정으로 복귀했다. * 중화인민공화국을 대놓고 '중국'이라고 부를 것이다. 물론 지금도 대만 사람들 중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고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도 사석에서는 그렇게 하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해도 안 된다. 반드시 뒤에 '대륙'을 붙여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